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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자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 Jesus Christ)_표준킹제임스성경 비교

  • 작성자 사진: 갈보리침례교회 바이블빌리버
    갈보리침례교회 바이블빌리버
  • 2024년 3월 15일
  • 21분 분량

2023. 11. 23.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 Jesus Christ)




하나님과 성도의 동역의 관점에서

#개역성경과 표준킹제임스 성경 비교


칼빈과 아르마니우스의 구원론 논쟁

칼빈 => “믿음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

            “구원은 영원히 보장된다.”

아르미니우스 => “믿음은 인간의 자유 의지”

                       “구원은 잃어버릴 수 있다.”


오늘 볼 주제는 믿음에 관한 것인데요. 사실 기독교계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해서 칼빈과 아르미니우스가 서로 논쟁이 크게 있었고 개신교에서는 마치 둘 중에 하나만 맞다라는 생각을 가질 정도로 양쪽 진영으로 나뉘었어요. 그러나 성경적으로 봤을 때, 개신교가 칼빈과 아르메니우스의 믿음에 대해서 논하기 이 전부터 이미 바이블빌리버 침례교도는 항상 있어 왔잖아요? 우리 입장에서 봤을 때는 둘 다 양쪽에서 부족한 논쟁을 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이 부분을 성경에 있는 그대로를 잘 살려주면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려울게 없다고 봅니다. 그럼 이 양쪽 진영의 주장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칼빈이 주장했던 것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을 하자면 “믿음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거절할 수 없고 무조건 받아들여야 되는 은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주셔서 믿을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구원은 하나님이 태초 이전부터 예정해 놓으신 예정론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구원은 영원히 보장된다.” 이 두가지가 (칼빈의) 구원과 믿음과 관련해서 큰 초점인데 이러한 칼빈의 구원론은 철학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성경만 가지고 한게 아니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이런 사고 방식을 하게 됐어요. 아르미니우스 같은 경우에는 “믿음은 인간의 자유 의지다. 하나님이 강제로 믿게 하는 것이 아니다. 불가항력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은혜가 아니다. 인간의 자유 의지로 믿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자유 의지로 믿음을 거부해 버리면 구원은 잃어버릴 수 있다.” 고 주장한 거예요. 그래서 칼빈과 아르메니우스는 둘 다 모순점들이 있고 성경적으로 봤을 때 문제가 많은데 개신교 내에서는 아르미니우스 아니면 칼빈주의. 쉽게 말하면 감리교 쪽 아니면 장로교 쪽. 이런 식으로 나뉘어진 거예요. 그런데 큰 틀에서 보면 칼빈과 아르미니안주의의 “불가항력적으로 믿을수 밖에 없다.”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틀렸고요. “믿음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믿는다.” “구원은 영원히 보장된다.”는 맞아요. 그러면 이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아야 맞는 부분은 왜 맞는지와 성경은 어느 부분을 지지하는 지를 알 수 있겠죠?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저항할 수 있는가? YES

“믿음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

“믿음은 인간의 자유 의지”

[표준킹제임스성경]요한복음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졌고 아들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의 위에 거하느니라.”

 

일단은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는 것을 보면 ‘아들을 믿는 자’는 능동입니다. 능동태죠. be동사로 능동이에요. 능동이 뭐예요? 주체가 능동적으로 자기가 하는 거예요. ‘아들을 믿는 자는’ 믿어지는 자가 아니죠? 아들을 믿는 거예요. ‘아들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졌고 아들을 믿지 아니하는 자’ 믿을 수 없는게 아니라 믿지 않는 거죠. 그러면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의 위에 거하느니라.” 라고 했어요. 성경에 이런 부분은 아주 많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아들을 믿는 자는’ 그래서 능동적으로 자기가 하는 거예요. 믿는 것은 인간의 자유 의지라는 것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왜냐하면 자유 의지가 아니라면, 일단은 하나님께서 불의하신 하나님이 되는 거에요. 하나님이 정해 놓으셔서 어쩔 수 없이 믿었고 또 어쩔수 없이 믿지 못했는데 어떤 사람은 영원히 지옥에서 불태워지고 또 어떤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는다? 이것은 굉장히 공의롭지 않으신 거죠. 모든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거잖아요. 지옥에 가는 사람도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거죠. 왜냐하면?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믿고 싶어도 절대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믿기로 예정되어 있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요. 마찬가지로 믿는 사람도 자기가 어떻게 살든, 이상하게 살아도 결국 선택 받았으면 믿게 되는 거예요, 이것도 불합리 하죠? 그런데 믿음이 개인의 의지에 따른 개인의 책임이고 개인의 선택이라고 하면 개인의 영원한 형벌 또는 개인의 영원한 생명이 결정되는 것은 합리적입니다. 개인의 책임이니까요.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저항할 수 있는가? YES

“믿음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

“믿음은 인간의 자유 의지”

[표준킹제임스성경] 누가복음 13:34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에게로 보내심을 받은 자들을 돌로 쳐서 죽이는 자야, 마치 암탉이 그녀의 한배 새끼들을 자기 두 날개 아래로 모으려고 하듯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너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려고 하였느냐! 그런데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직접 거절 할 수 있다고도 했어요. 그런데 왜 불가항력적인 은혜라고 하냐? 그럼 칼빈이 말하는 불가항력적인 은혜는 뭐냐? “하나님이 원하시면 절대 거절할 수 없다,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 그러나 주권이란 말은 성경에 없는 단어에요. 그들은 주권, sovereignty를 너무 비성경적으로 강조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면 다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아무도 거절할 수 없다.”라고 하지만 성경에서는 여러 번 말하죠.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얼마나 자주 너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려고 하였느냐! 그런데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즉 하나님이 모으려 하고 하나님이 돌이키게 하려고 했는데도 사람들이 원하지 않으면 거절할 수 있다는 거예요. 보세요. 하나님은 분명히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세요. 그런데 정말 모든 사람은 구원 받나요? 그렇지 않잖아요. 하나님은 오래 참으셔서 아무도 멸망받지 않기를 원하세요. 그러나 정말 아무도 멸망하지 않나요? 아니요. 멸망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개인이 거절했고, 그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거절했기 때문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든지 저항할 수 있고 거절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저항할 수 있는가? YES

“믿음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

“믿음은 인간의 자유 의지”

[표준킹제임스성경]사도행전 16:31

그러자 그들이 말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는 구원을 받을 것이요, 너의 집도 그러하리라.” 하였더라.

 

이 구절은 자유 의지가 강조가 된 표현이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는 구원을 받을 것이요. 너의 집도 그러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들은 아주 중요한 자유 의지가 있는 부분이죠?

 

[표준킹제임스성경]갈라디아서 3:22-23

22 그러나 성경 기록은 모두를 죄 아래 가두어 두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이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게 하려 함이라.

23 그러나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 붙들려 있었으며 후에 계시될 믿음에 이를 때까지 갇혀 있었느니라.

 

칼빈의 믿음론이 옳아!   믿음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야~

 

갈라디아서 3장 22절에서 23절 보시면 어떤 표현이 나오냐면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이란 표현이 나와요. 지금까지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서 제가 칼빈주의랑 알미니안주의를 언급을 했는데요. “칼빈의 믿음론이 옳다!”고 하거나 “믿음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다.” 고 하는 말을 포괄적으로 보면 각각 조금씩 틀린 부분이 있는데요. 성경에 따르면 ‘성경 기록은 모두를 죄 아래 가두어 두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이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믿음이 오기 전에 자, 보세요. 믿음이 왔다라고 돼 있어요.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 붙들려 있었으며 후에 계시될 믿음에 이를 때까지 갇혀 있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믿음이 왔다라는 표현을 한번 주의해 봅시다.

 

그리스도의 믿음

하나님과 성도의 동역의 관점에서

#개역성경과 표준킹제임스 성경 비교

 

‘그리스도의 믿음’이란 단어가 안타깝게도 개역성경에서는 잘 살아 있지 않았어요. 이것이 목적격으로만 해석이 됐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의 구원, 하나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을 조화롭게 보지 못하게 한 그런 제한된 번역이었던 겁니다. 그 부분을 우리가 좀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Faith of Jesus Christ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Faith of Jesus Christ는 있는 그대로 아주 단순하게 해석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죠. 그런데 한국 사람 중에 일부 사람들이 잘 이해를 못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뭐지?” 하고 헷갈려 합니다. 그것은 잘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뭐지?” 보통 이런 경우 개역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이렇게 돼 있어요. 그건 이해가 돼요.  “아,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구나!” 그러면 어떻게 되냐? 믿음의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가지 사실만 됩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믿음”에 대한 계시가 한국어 성경에서는 없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강조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믿음이 없어서 균형잡힌 조화를 보기가 굉장히 힘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우리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faith of Jesus Christ]

“그리스도의 믿음” [faith of Christ]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faith of our Lord Jesus Christ]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해석해야 한다.” (?)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그리스도의 믿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이런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아주 단순한 표현이죠? 여기서 of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전치사인데 그 중 가장 기본적이고 초등학생들도 잘 아는 of의 기본 뜻은 “~의”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Jesus Christ]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Christ]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our Lord Jesus Christ]

한국어 조사 “의”는 주격, 속격, 목적격, 대격 등의 역할을 모두 함

 

그래서 예를 들면 한국어로도 “의”는 굉장히 많은 뜻이 있어요. 한국어를 먼저 보여 드릴게요. 한국어 조사 “~의”는 주격, 속격, 목적격, 대격 등의 역할을 모두 다 합니다. 그래서 주격을 표현할 수도 있고 속격을 표현할 수도 있고 목적격을 표현할 수도 있는데요.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Jesus Christ]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Christ]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our Lord Jesus Christ]

1. 앞 체언이 관형어 구실을 하게 하며, 뒤 체언이 나타내는 대상이 앞 체언에 소유되거나 소속됨을 나타내는 격 조사. => 속격 

ex) 나의 옷

 

예를 들면, 앞 체언이 관형어 구실을 하게 하며, 표준국어 대사전에 있는 말입니다. 뒤 체언이 나타내는 대상이 앞 체언에 소유되거나 소속됨을 나타내는 격 조사.  속격이죠? 나의 옷은 뭐에요? 나에게 속한 옷. 내가 소유한 옷을 말하는 겁니다. 그렇죠? 속격이에요.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Jesus Christ]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Christ]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our Lord Jesus Christ]

3. 앞 체언이 관형어 구실을 하게 하며, 앞 체언이 뒤 체언이 나타내는 대상을 만들거나 이룬 형성자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 => 주격 

ex) 다윈의 진화론.

 

그러니까 다윈의 진화론은 다윈이 만든 진화론이라는 거죠? 다윈이 주체가 되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Jesus Christ]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Christ]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our Lord Jesus Christ]

5. 앞 체언이 관형어 구실을 하게 하며, 앞 체언이 뒤 체언이 나타내는 행동의 대상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 => 목적격 

ex) 질서의 확립

 

그러면 질서의 확립은, 질서의 대상이 확립이 되는 거죠. 질서를 확립하다. 이런 식으로 목적격을 취하게 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Jesus Christ]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Christ]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믿음” [faith of our Lord Jesus Christ]

7. 앞 체언이 관형어 구실을 하게 하며, 뒤 체언에 오는 인물의 행동이나 행위가 앞 체언이 나타내는 사건이나 사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격 조사.=> 대격

ex) 책의 저자.

 

책의 저자는 책에 관한 저자로 대상을 표현 하죠? 그래서 주격, 속격, 목적격, 대격, ~에 대한, ~에 관한 뜻도 이렇게 “~의”로 표현을 할 수 있어요. 제가 일부러 다 인용하지 않고 또 그 사이에 있는 상세한 의미를 다 인용하지 않았지만 “~의” 만 해도 거의 10개 정도의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뜻이 있는게 “~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Jesus Christ]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Christ]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our Lord Jesus Christ]

 

✔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믿음

[OECD] V.15.

Following a noun, as the head of a postmodifying noun phrase. Sometimes called the subjective genitive.

 

영어 of도 그만큼 많아요. 예를 들면, 옥스포드 잉글리시 딕셔너리인데요. 자,보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믿음”이란 뜻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 믿음”을 “`의” of의 관점으로만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체에요. 그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믿음이에요. 그래서 여기 15번의 뜻을 보면은 Following a noun, as the head of a postmodifying noun phrase . head, 주격, 주어 역할을 해서 이걸 subjective genitive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쉽게 말하면 주격 역할을 한다는 거에요.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Jesus Christ]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Christ]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our Lord Jesus Christ]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OECD] VII.24.

Forming a complement to the object of a transitive clause, indicating a person or thing regarded as what is specified by the object of the clause.

 

24번의 뜻을 보면은 Forming a complement to the object of a transitive clause, indicating a person or thing regarded as what is specified by the object of the clause. 쉽게 말하면 object는 목적격, 이 절의 목적을 구체화 시키는 역할을 하죠. 목적어 역할도 하고 목적을 구체화 시키는 역할도 하는데 크게 보면 목적격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도 됩니다. “~의”의 역할 자체가 그래요.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Jesus Christ]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Christ]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our Lord Jesus Christ]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OECD] VIII.25

Concerning, about; with regard to, regarding.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or 관한) 믿음. Concerning, about; with regard to, regarding. 뜻 자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도 됩니다. of의 뜻 자체는요.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Jesus Christ]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Christ]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our Lord Jesus Christ]

 

✔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믿음

[OECD] IV.

Of the source or starting point of action, emotion, etc., in respect of motive, cause, reason, or ground.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믿음. Of the source or starting point of action, emotion, etc., in respect of motive, cause, reason, or ground. 속했다. 출처를 밝히기도 하고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소유를 나타내기도 하는 그런 역할..등등. 다양하게 역할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Jesus Christ]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Christ]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믿음” [faith of our Lord Jesus Christ]

 

✔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믿음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믿음


그래서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이렇게 했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믿음도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도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믿음도 돼요. 이게 국문법이나 영문법이 다 가능한 겁니다. 성경으로 따지면 이 모든게 다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믿음”, 이 한마디로 다 적용이 가능한 거예요. 그런데 이 중에 하나로만 해석을 하면 어떻게 돼요?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이런 식으로만 표현을 하면 나머지 세 개에 대한 내용이 다 없어지는 거죠. 하나만 구체화 된 거예요. 그랬을 때 믿음에 대한 혼동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 믿음은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 뿐만 아니라 아걸 믿을 수 있도록 예수님이 주신 믿음도 포함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나에게 믿음도 주시고 이 믿음을 내가 자유의지를 발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게 동력이에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요. 하나님의 은혜나 하나님의 선물이나 하나님의 어떤 도우심 전혀 없이 내가 순수하게 믿는 다는 것도 존재하지 않고 완전히 순수 100% 나 혼자 하나님의 도우심이 전혀없이 내가 스스로 완전히 100% 믿는 것도 아니고요. 마찬가지로 나의 자유의지는 전혀 무시된 채 하나님께서 무조건 믿게 하는 것도 틀린 겁니다. 둘 다 필요해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서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믿을 수 있게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되고요. 그러면 이 사람이 선택해서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믿어야 되는 겁니다. 이 둘 다가 필요한 거예요. 알미니안주의랑 칼빈주의는 이 두 가지를 따로 나눠서 본 거예요. 합쳐서 보지를 못한 거예요. 우리가 성경에서 보면은, 아, 제가 파라오 예를 들어서 종종 설명 드린 적이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잖아요? 왜 그랬어요? 파라오가 먼저 마음을 완악하게 했으니까요. 그리고 파라오가 이미 거절할 것을 아셨고 또, 그 사람이 완악하게 구니까 하나님께서 더 완악하게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둘 다를 함께 다루실 때가 있습니다. 사탄도 마찬가지예요. 사탄은 욥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욥을 쳤고요. 하나님은 욥을 시험하기 위해서 사탄이 욥을 치는 것을 허락하셨어요. 하나님은 이렇게 같이 동시에 움직이실 때가 많아요. 둘 중 하나만, 단순하게 하시는게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다윗도 역대기상과 열왕기상을 보면은 어떻게 돼 있죠? 마귀가 충동을 해 가지고 다윗이 사람들을 계수했다라고도 나오고, 또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라는 것도 나와요. 둘 다 진리에요. 하나로 딱 무자르듯이 하나만 강조해 버리면 왜곡이 되는 거죠.

 

[표준킹제임스성경]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그런즉 이제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개역성경 :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봅시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이 부분은 나중에 기회가 될 때 아주 중요한 구절이니까 좀 더 설명하겠고요. 이 후반부를 보겠습니다. ‘그런즉 이제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첫 번째,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산다. 라는 목적의 의미도 있고 두 번째,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산다. 라는 주어의 의미가 있습니다. 크게 두가지로 쉽게 나누면요. 그렇기 때문에 “아, 하나님께서 이미 나에게 주신 믿음으로 살고 내가 이 믿음을 발휘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살아야 되는 거구나!” 라는 것이 되는데 개역성경 같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거다’ 라고 하면 어떻게 돼냐? “아, 그냥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으로 사는 거구나!”라는 것만 된다는 거예요. 이해 됐죠? 그럼 여기서 개역성경이 간과한 것은? 믿음의 출처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데 “그리스도께 속한 믿음”이란 의미로서 그리스도의 믿음이 전혀 살아 있지 않다는 거예요. 

 

성경은 믿음의 출처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신다.

성경은 믿음의 출처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1.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 (엡 2:8-9)

[표준킹제임스성경] 8 이는 너희가 은혜로 구원받은 것은 믿음을 통한 것이기 때문이니, 이는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For by grace are ye saved through faith;and that not of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1번.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세요. 에베소서 2장 8,9절인데요. ‘이는 너희가 은혜로 구원받은 것은 믿음을 통한 것이기 때문이니, 이는’ 믿음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그것은’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입니다. 이게 영어 그대로의 어순이에요. For by grace are ye saved through faith, 이렇게 돼 있거든요? grace가 먼저 나오고 faith입니다. and that not of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러면 여기 it은 믿음이에요. 그런데 지금 개역성경이나 한국의 주요 성경들은 어떻게 돼 있느냐? ‘이는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렇게 돼 있거든요. 그럼 맨 뒤에 있는 게 뭐예요? 구원이죠. 그러니깐 “아,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구나!” 구원도 하나님의 선물은 맞아요. 로마서 6장에 따르면 영원한 생명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어요. 그러나 여기서 강조한 것은 구원이 아니에요. 꼭 영어로 보세요. ‘그것(it)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것(it)은 명사인 믿음, faith죠?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영어로 다시보면 For by grace are ye saved through faith에서 you are saved, saved는 동사로, 너희는 구원받았다라는 동작을 말합니다. it(그것)은 동사(saved)를 받지 않았어요. 킹제임스성경을 그대로 따르면, faith,믿음이 맨 마지막에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강조해요. 그래서 영원한 생명도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인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이것이 중요해요.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믿음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에요. 열심히 노력을 해서 믿음이 온게 아니에요.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믿음은 내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주어진 거예요. 그래서 일단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 여기까지만 보면 칼빈주의자들이 좋아하겠죠? “그래, 맞아. 믿음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거야. 그러니깐 우리가 스스로 믿은게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셔서 믿은 거야.” 여기까지만 보면요? 그러나 이것은 부분적인 진실입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디모데전서 3:13

이는 집사직을 수행한 자들은 스스로에게 좋은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안에서 큰 담대함을 값을 치르고 얻느니라.

For they that have used the office of a deacon well purchase ro themselves a good degree, and great boldness in the faith which is in Christ Jesus.

 

이 뒤에 좀 더 설명하기 전에 디모데전서 3장 13절에서 성경이 뭐라고 말했는지, 믿음은 누구 안에 있는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는 집사직을 수행한 자들은 스스로에게 좋은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안에서 큰 담대함을 값을 치르고 얻느니라.’고 했어요. faith which is in Christ Jesus. 이거는 너무나 명백하죠. 사실 이것은 개역성경에도 있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 믿음이” 라고 분명히 말했어요. 이거는 다르게 해석할 수가 없어요. which is in Christ Jesus.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는 거예요. “믿음은 예수님께 속해 있고 예수님 안에 있다”라는 것을 강조한 거예요.

 

 [표준킹제임스성경] 갈라디아서 5:22

그러나 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온화함과 선함과 믿음

  

갈라디아서 5장 22절을 보면 믿음은 성령의 열매라고 했죠. 믿음은 성령의 열매 9가지 중에 하나에요. 쉽게 말하면 믿음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거라는 거죠. 성령님을 통해서요. 사랑도 우리가 잘나서 사랑을 진짜 할 수 있는게 아니라, 성령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사랑하는 거죠. 또 성령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기뻐하는 겁니다. 수동적으로 내가 로봇처럼 가만히 있는데 성령님이 스위치 누르니까 어쩔 수 없이 불가항력적으로 기뻐하거나 불가항력적으로 사랑하는게 아니죠. 성령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내가 순종하면, 그 사랑에 순종하면, 내가 적극적으로  그 사랑을 사용하는 것이 열매로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시는 것과 내가 자유의지로 그것에 순종하는 것. 이 둘 다가 있어야 열매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열매가 나오진 않아요. 성령님 없이 열매가 나올 수가 없어요. 반대로 내가 불순종하는데 열매가 나오진 않죠?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성령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내가 거기에 순종해서 사랑해야 열매가 나옵니다.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한 거에요. 믿음도 마찬가지예요. 성령님께서 주시는 믿음으로 내가 이 믿음을 발휘해야 돼요. 둘 다가 필요한 거죠.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9: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를 말하고 나는 거짓말하지 아니하나니, 나의 양심 또한 성령님 안에서 내게 증거하거니와

I say the truth in Christ, I lie not, my conscience also bearing me witness in the Holy Ghost,

 

그래서 로마서 9장 1절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를 말하고 나는 거짓말하지 아니하나니, 나의 양심 또한 성령님 안에서 내게 증거하거니와’ 그리스도 안에서성령님 안에서가 같이 등장을 하죠.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됐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있게 됐죠? 그 말이 뭐에요? 그리스도의 본체, 그리스도 자체는 지금 셋째 하늘에 계시잖아요? 그래서 성령님이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들어오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 하고 계셔서 그게 그리스도가 거주하신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와 성령 안에서는 같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어디에 있어요? 그리스도 안에 있고 성령님 안에 있기 때문에, 믿음을 성령님께서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이것을 받아서 활용하고 발휘하고 자유의지로 사용하고 순종해야  돼요.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12:3

이는 내가 나에게 주신 그 은혜를 통하여 너희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말하기 때문이니, 자신이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보다 자신을 더 높게 생각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께서 각인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냉철하게 생각하라. [according as God hath dealt to every man the measure of faith.]

 

로마서 12장 3절에 명확하게 나오죠? ‘오직 하나님께서 각인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냉철하게 생각하라.’ 하나님께서 믿음의 분량을 나눠 주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눠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그 믿음을 소유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게 신약의 믿음과 구약의 믿음의 차이점이예요. 그래서 구약은 자기 믿음이라는 표현이 있고요. 신약에서는 선물로서의 믿음인 거예요. 내 믿음이 아니에요. 그리스도께 속한 믿음인데 내가 이것을 발휘하는 겁니다. 그래서 출처는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거고 실행은 내가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믿음이란 표현도 나오고 너의 믿음이란 표현도 나옵니다. 그렇죠? “너의 믿음이 성장해야 된다.” 이렇게요.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주셔서 내가 소유하고 있고 또 내가 발휘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출처는 어디다? 하나님께서 나눠 주시는 것이다.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12:6

그런즉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들을 가졌으니, 예언이면 우리가 믿음의 비례에 따라 예언하자⋅

[표준킹제임스성경] 고린도전서 12:8,9

8 이는 누군가에게는 령으로 지혜의 말씀이 주어지고, 다른 이에게는 동일한 령으로 지식의 말씀이 주어졌으며, 9 다른 이에게는 동일한 령으로 믿음이 주어지고⋅⋅⋅

 

그래서 로마서 12장 6절, 고린도전서 12장 8절, 9절 보면 은사들 중에 믿음이 나오죠. 믿음의 비례에 대해서 나옵니다. 또 ‘다른 이에게는 동일한 령으로 믿음이 주어지고 라고 했어요.성령님으로, 성령님에 의해서 믿음이 주어진다라고 분명히 성경에서 나오죠. 이것을 이해하면 그리스도의 믿음, 어렵지 않습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히브리서 12:2

우리 믿음의 창시자이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신 앞에 놓인 즐거움을 위하여 수치를 멸시하시고 십자가를 견디셨고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게 되셨느니라.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 믿음의 출처는 ‘믿음의 창시자이자 완성자이신 예수님’ 예수님이 출처라고 나오고 있죠? 예수님이 창시한 믿음이에요. 예수님이 완성한 믿음이에요. 그 믿음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해주시는 겁니다. 우리는 거기서 “네. 제가 이 믿음을 사용해서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하면 구원받는 것이고 “안 믿을래요.” 하면 구원받지 못하는거에요. 그 영역에 있어서도 우리의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선물로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자랑할 수 없는 거예요. “내가 예수님 믿었다.”고 자랑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애초에 내가 잘해서 받은 믿음도 아니고 내 행위에서 난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정말 선물로 받은 믿음이고, 또 믿을 수 있게 해주신 것이고, 나는 “네.” 라고 한 것 뿐이기 때문에요.

 

[표준킹제임스성경] 골로새서 1:4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들을 향해 지니고 있는 너희의 사랑에 관하여 우리가 들었기 때문이요. [since we heard of your faith in christ Jesus⋅⋅⋅]

표준킹제임스성경] 디모데전서 1:14

그리하여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더불어 지극히 넘쳤도다. [with faith and love which is in Christ Jesus.]

 

그래서 이 두 개의 차이점을 보겠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4절은, 아까 디모데전서 3장 13절에서도 봤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고 디모데전서 1장 14절도 with faith and love which is in Christ Jesus,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이에요. 그런데 골로새서 1장 4절은 since we heard of your faith in christ Jesus 이죠? 이거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아니에요. 문법적으로 전치사 in의 역할에 따른거에요. which is in Christ Jesus랑 다르잖아요? 이거는 저한테 자주 들어온 질문과 제안이라서 제가 언제 한번 설명을 드려야 되겠다 싶었어요. 보세요. 디모데전서 1장 14절, which is in Christ Jesus는 의심의 여지없이 논쟁의 여지없이 그냥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에요. be 동사가 있잖아요?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your faith in christ Jesus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또는 “그리스도를 믿음”이에요. have faith in~, have faith in God, 하나님을 믿어라, 숙어입니다. 마찬가지로 문법적으로 구동사라고도 표현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너희의 믿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너의 믿음”이라고 표현하는 디모데전서랑 다릅니다. be동사가 나올 때는 “~안에 있다.” 이렇게 표현하고 그러지 않을 때 (전치사 in으로 쓰일 때)는 “~대한”. 이렇게 표현을 하면 됩니다. 이거는 자주 질문이 나왔던 거라서 설명을 드린 거고요.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10:6-8

6 그러나 믿음에서 나오는 의는 이런 식으로 말하느니라. “너의 마음속에 말하기를, ‘누가 하늘 속으로 올라 갈 것인가?’ 하지 말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로부터 끌어 내리려는 것이라.) 7 혹은 ‘누가 깊음 속으로 내려갈 것인가?’ 하지 말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끌어 올리려는 것이라.) 8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너에게 가까이 있으니, 바로 너의 입안에 있으며 너의 마음속에 있도다.” 하니, 곧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그럼 이 믿음의 말씀이 어떻게 일어나는(or 작용하는) 것인가? 한번 볼게요. 로마서 10장 6절-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에서 나오는 의는’, 보세요. 신약의 구원을 설명을 하는데 우리의 의는 “믿음에서 나왔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의는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요. 구약에서는 “자기 의” 라고 하죠. 그런데 신약에서 구원은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거라고 합니다. 어떻게요? 믿음에서요.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마음속에 말하기를 ‘누가 하늘 속으로 올라갈 것인가?’ 하지 말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로부터 끌어 내리려는 것이라.) 혹은 ‘누가 깊음 속으로 내려갈 것인가?’ 하지 말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끌어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너에게 가까이 있으니 바로 너의 입 안에 있으며 너의 마음 속에 있도다.” 하니, 곧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자, 무슨 말이냐면요? 사람은 변명할 수 있잖아요? “아, 저는 예수님 (안 보여서) 못 믿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 믿어야 하잖아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의이시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의를 완성하셨고 하나님의 의 그 자체이시까요. 그럼 누가 하늘 속으로 갈 거냐?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로부터 끌어 내리려는 거라는 거에요. 그러면 누가 깊은 속으로 내려갈 것인가?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리스도를 죽은 자로부터 끌어 올리려는 거라는 거에요. 그 말은? 멀리서 찾지 말라는 거에요. 어디 있다고요? 바로 너의 입 안에 있고 너의 마음속에 있고 그 말씀이 가까이 있다는 겁니다, 어떤 말씀이요? 믿음의 말씀이요. 무슨 말이냐면? 여러분이 복음을 들었어요. 이 복음의 말씀을 들었을 때,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믿음이, 그 믿음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여러분의 마음속과 입안 바로 가까이 있게 두신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너무나 우리 가까이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거예요. 누구나 믿을 수 있게 입 안에도 주시고 마음 속에도 주신다는 거예요.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10:9-10

9 네가 만일 너의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너의 마음속에 믿는 다면, 너는 구원을 받으리라.

10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 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라.

 

그렇기 때문에, 바로 다음이 9절 10절 이죠. ‘네가 만일 너의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너의 마음속에 믿는 다면, 너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나님이 다 주셨어요. 멀리서 찾지 말라는 거에요. 하늘 속에서 찾지 말고, 깊음 속에서 찾지 말라. 하나님께서 주신 이 믿음의 말씀을 들었을 때, 믿음의 말씀을 바로 너의 입안에, 너의 마음속에 주셨으니까, “네. 믿겠습니다.” 하고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속으로 믿는다면 구원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렇게 쉽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선물을 너무 어렵게 주셨다면 선물이 아니죠. 누구나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선물로 준 거예요.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도록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셨어요? 특히 남자분들, 생각해 보세요. 저는 굉장히 의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뉴스 기사에 뭐가 떴다 해서 무조건 믿는 사람도 아니에요,  누가 뭐뭐 했다해서 그냥 무조건 믿는 사람도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너무나 당연하고 쉽게, 2천년 전에 어떤 유대인이 죽었는데 살아났다라는 것도 믿었고 그 사람이 하나님이라는 것도 믿었고 또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이신데 인간으로 오신 분이라는 걸 믿었고 나의 구원자라는 걸 믿었어요. 무슨 근거로요? 내가 그걸 처음 믿었던 초등학교 때, 제가 그것을 뭐 예언들을 막 따져보고 믿은 것도 아니에요. 제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증거를 넘치게 논리적으로 알아서 믿은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너무나 당연하게 믿었습니다. 저는 그럴 마음이 있었으니까 믿었어요. 제가 복음을 전하면서 느끼는게 뭐냐면요? 엄청나게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이든, 날카롭게 생긴 사람이든, 뭐 깐깐하게 생긴 사람이든 너무 희한하게 준비된 것처럼 예수님을 받아들여요. 너무 (신기한게) 내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었어요. 그냥 받아들이는 거예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 하나님께서 그렇게 믿을 수 있도록 입안과 마음속에 주셨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막 따져 가면서 믿은 거 아니잖아요? 뭐 그런 사람도 있겠죠? 그러나 대부분은 너무 당연하게 믿었을 거에요. 믿음을 선물로 주셨으니까요. 이렇게 (로마서 10:9-10처럼) 하면은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10:13-15

13 이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를 자는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14 그렇다면 그들이 믿지 아니한 분을 어떻게 그들이 부르겠느냐? 또한 그들이 들어 보지 못한 분을 어떻게 그들이 믿겠느냐? 또한 선포자 한 명도 없이 어떻게 그들이 듣겠느냐? 15 또한 그들이 보내심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들이 선포하겠느냐? 기록된 바와 같으니,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고 좋은 것들의 반가운 소식들을 가져오는 발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였도다.

 

13절에서 15절을 보세요. ‘이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를 자는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렇다면 그들이 믿지 아니한 분을 어떻게 그들이 부르겠느냐?’ 그러니까 믿고 불러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그들이 들어보지 못한 분은 어떻게 믿겠느냐?’ 믿을려면 들어야 된다는 거죠. 그 다음에 ‘또한 선포자 한 명도 없이 어떻게 그들이 듣겠느냐?’ 선포하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또한 그들이 보내심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들이 선포하겠느냐?’ 라고 했어요. 그래서 믿음은 어떻게 생기냐? 들으니까 믿음이 오고,  들으니까 믿음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복음을 선포하는게 얼마나 중요하냐면?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냥 복음 선포자가 선포하는 것을 들었어요. 그때 들을 수 있도록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거에요. 정말 어떤 경우에는 그 자리를 지나가다가 듣고 믿는 경우도 있어요. 아니면 “에이, 싫어. 안들을래.” 거절해 버리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니까 복음을 들으면, 믿을 수 있는 선물을 주신다는거예요. 믿음을 (선물로 주세요).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10:16-17

16 그러나 그들 모두가 복음에 순종하지는 아니하였도다. 이는 이사~야가 말하기를 , “주여, 우리가 알린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기 때문이라.

17 그렇기에 믿음은 들음에 의해서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오느니라.

 

그래서 로마서 10장 16절-17절의 결론이 뭐예요? ‘그러나 그들 모두가 복음에 순종하지는 아니하였도다. 이는 이사-야가 말하기를 , “주여, 우리가 알린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기 때문이라.

그렇기에 믿음은 들음에 의해서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오느니라.’ 특히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들으면, 들음에 의해서 믿음이 온다는 거예요. 어디로부터 올까요?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거예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믿음이에요. 선물로 주어지는 믿음입니다. 들으면 믿을 수 있도록 선물로 주신다는 거예요. 그 상태에서 내가 자유의지를 발휘해서 “네. 믿겠습니다!” 영어로는 (명사) faith가 오는 거고, “ I believe(동사), 제가 믿겠습니다.” 이럴 때 구원을 받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과 내 자유의지로 믿는 것의 동력입니다. 같이 이루어지는 일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는 단어가 있어야만 함께 표현될 수 있는 용어라는 것입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디모데전서 2:4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기를 원하시고, 또 진리의 지식에 이르게 하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장 4절도 그렇죠?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기를 원하시고, 또 진리의 지식에 이르게 하기를 원하시느니라.’ 이것도 영어가 있었으면 좀 더 설명하기가 쉬울텐데요. 제가 한번 구원과 관련된 구절을 좀 모아서 설명을 드릴 때 하겠고요. Who will have all men to be saved, 이것은  have가 있는 사역 동사 구절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라고 하면 안 되고 “구원받게 하기를 원하시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게 하기를 원하신다.” 라고 해야 맞습니다.  사역동사가 들어가 있는 거거든요. 뭐 이거는 나중에 영어와 함께 설명을 드릴 때가 있으면 다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만큼(모든 사람들이) 이렇게(구원받게) 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심지어 어디까지 해 주시느냐?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이 그동안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완벽한 의를, 하나님이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직접 율법의 의를 완벽하게 이루시고, 그 다음에 친히 우리의 죄를 위해서 대신 피를 흘려 죽으시고, 죄값도 다 치뤄 주시고, 장사되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해서 승리까지 하시고 그리고 승천하셔서 이 피를 가지고 셋째 하늘에 있는 진짜 성막에 가셔서 피를 드려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이제 그것을 우리가 들을 수 있도록 그분의 종을 보내셔서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고, 그 복음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 믿을 수 있도록 다 해 주셨어요. 이 어마어마한 사실을 논리적으로 믿을 수 없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이것도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거예요. 이제 여러분의 선택은 Yes or No. 이거 밖에 없습니다. 다 해주신 거예요. 믿음도 하나님이 전적으로 다 해주신게 맞습니다. 그러면 내 의지는 필요없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내 자유의지로 믿는 거예요. 그러면 그 능력이 발휘되는 겁니다. 여러분의 성장도 마찬가지예요. 그것을 성령의 열매라고 하는데, 그것도 성령님이 주시는 거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거예요. 계속 믿음으로 공급해 주십니다. 이렇게 공급을 해 주시는 것을 “ 네.” 하고 순종해서 이 믿음을 계속 발휘하면, 믿음의 분량이라고 하죠? 믿음은 성장합니다. 믿음은 사람마다 분량이 다 달라요. 얼마나 여러분의 것으로 만드느냐? 여러분이 얼마만큼 발휘하느냐에 따라 달라요. 그러나 출처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거예요.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의 선물이에요. 우리가 하나님과 상관없이 그냥 잘나서 믿은게 아니라는 거죠. 이 조화를 우리가 성령을 통해서 알아야 됩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요한복음 16:8-11

8 그리고 그분께서 오시면 친히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나의 아버지께로 가므로 너희가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하기 때문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심판을 받기 때문이라.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랬어요. 성령님께서 오시면 ‘친히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그랬어요. 그런데 뭘 책망하느냐?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야, 너,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느냐? 너 복음을 지금 방금 들었지 않느냐? 너 죄인 맞잖아? 죄인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했잖아? 지옥에서 영원히 불탄다고 했잖아? 빨리 지옥으로부터 구원 받아야지?” ”아이쿠! 믿어야겠다!” 이렇게 책망을 하시면서 마음을 두드리는 역할도 성령님께서 해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복음 전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완전한 극단적 칼빈주의를 믿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복음 안 전합니다. 왜요?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한 사람은 구원해줄 거니까요. 그래서 모든 선교사들은 온건한 칼빈주의자는 있어도 극단적 칼빈주의자는 없습니다. 그들은 정말 가만히만 있어도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다 구원해 준다고 믿으니까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바울과 같은 온전한 선교사의 믿음은 “내가 전해야 된다.” 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뭐예요?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복음의 선포를 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생기도록 성령님께서 책망을 하시고 마음 문을 두드린다는 거에요. 그래서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노출된 사람은 계속 성령님께서 더 강하게 책망하시고 요구 하시는 것을 듣게 되고요. 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계속 믿을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시는 거에요.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사람이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고집스럽던 사람이 갑자기 약해졌을 때, 갑자기 무슨 슬픈일을 당하든, 갑자기 외롭게 되었든, 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선포한 사람의 말을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믿음을 통해서, 자기의 의지로 “예, 믿겠습니다.” 하면 이 사람은 믿는 거예요. 이 과정이 복음의 순환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아무리 자기 이웃에게 잘해 주고 “아, 저는 그리스도인인데….” 하면서 잘 해주면, 좋죠. 좋은 간증을 남기는 건 좋은 거예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거기까지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복음을 선포해야 됩니다. 복음을 알려 줘야 된다는 겁니다.

 

표준킹제임스성경] 로마서 2:3-4

3 오, 그런 것들을 행하는 그들을 판단하면서 동일한 짓을 행하는 사람아, 그런즉 너는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되리라고 생각하느냐?

4 아니면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를 회개로 이끄시는 것을 모른 채, 네가 그분의 선하심과 관용과 오래 참의심의 부요함을 멸시하는 것이냐?

 

그런데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를 회개로 이끄시는 것을 모른채, 네가 그분의 선하심과 관용과 오래 참의심의 부요함을 멸시한다.’라고 하시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봅니다. “왜 죄인들, 그 악한 사람들은 바로 지옥에 안 갔습니까?” 네, 하나님은 그 악한 사람도 일단 참아 주시고 회개하기를 원하셔서, 선하심과 관용을 갖고 오래 참으면서 그 사람이 회개하기를 원하셔서 기회를 주신 겁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여러분이 그 사람인 거예요.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죄 지을 때 바로 죽이셨다면, 여러분이 12살 때, 13살 때, 뭐 여덟 살 때 바로 죽이셨다면, 여러분에게는 기회가 없었던 거죠. 여러분이나 저나 바로 그 사람이에요. 우리는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구원받은 거예요. 어떤 사람들 같은 경우는 하나님께서 끝까지 기회를 주실려고 하시다가,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으면 걷어가세요.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미래를 다 아시니까 어떤 사람은 더 일찍 걷어가실 때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좀 더 기회를 주셨다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으면 파라오처럼 진노의 그릇으로 쓰셔서 그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보이시다가 결국은 추락하게 만드셔서 심판으로 사용하실 때도 있고요. 어쨌든간에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주시는 분이고 우리가 어떻게든 믿기를 원하시는 분이 라는 것을 말하면서 여기서 이제 마무리 짓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선물이다.

그러나 그 선물을 받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선물입니다. 그 출처는 그리스도입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거에요. 그러나 그 선물을 받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예요. 그리고 그 선물을 받아서 활용하는 것도 인간의 자유의지에요. 그 선물을 더 많이 활용해서 그 믿음을 키우는 것도 인간의 자유의지 입니다. 이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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